2025-11-07

보이스피싱보다 교묘하고 잔혹한 범죄가 있다. 돈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 파괴하는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이다. 이 범죄의 진짜 무서운 점은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라 믿었던, 사랑과 시간과 돈을 쏟은 상대에게 받은 배신감과 자책 그리고 깊은 상실감에 있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로맨스 스캠의 실체와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한 예방·대응법을 법무법인 대륜의 한도영 수석 변호사에게 들어봤다.
“당신을 만나고 싶지만 여유가 없어요. 돈을 조금 보내줄 수 있나요?”
사랑한다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가. 하물며 날 이해해주는 데 외모까지 완벽한 낯선 이성에게서 날아온 사랑 고백이라면 더더욱. 오랜 시간 SNS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친구보다 더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면, 그 진심을 의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그가, 마침내 나를 보러 오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를 만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로맨스 스캠은 연애 감정을 미끼로 관계를 형성한 뒤, 그 믿음을 악용해 금전을 편취하는 범죄다. 주로 SNS나 채팅앱을 통해 피해자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장기간 감정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신뢰가 깊어질 즈음 생활비·투자금·배송비 대납 등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다.
이들은 피해자의 심리를 교묘히 조종해 관계를 끊지 못하게 만든다. 피해자는 사기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깨닫고 나서도 외면하며 빠져나오지 못한다. 실제로 투자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는 “이것도 로맨스 스캠인가요?”라고 묻는 게시물이 끊이지 않는다. 맞다는 답변이 달려도 대부분 부정한다. 그 관계가 가짜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해는 급증하는 추세다. 2020년까지만 해도 전체 피싱 범죄 중 비중이 미미했지만, 팬데믹 이후 데이팅앱과 SNS 이용이 폭증하면서 피해 사례가 급격히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로맨스 스캠 사건은 682건, 피해액은 454억원에 달했다. 이에 경찰청은 로맨스 스캠을 보이스피싱과 함께 금융범죄로 분류해 집중 단속하고 있다. 불과 지난 10월 초만 해도, 중국 사기 조직과 공모해 피해자 288명에게 334억원을 갈취한 국내 조직이 검거되기도 했다.
# 칭찬, 회유, 인내
외로움과 결핍을 파고드는 ‘가짜’들
로맨스 스캠은 보이스피싱 같은 금융범죄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보이스피싱이 단기간에 금전을 요구하는 즉각적인 범죄라면, 로맨스 스캠은 ‘라포(신뢰 관계)’를 형성해 장기적으로 사기 행위를 벌입니다. 길게는 몇 년에 걸쳐 피해자와 이성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소액부터 시작하다 점차 큰 금액을 요구하죠. 그래서 최종 피해액은 보이스피싱 못지않게 큽니다.
가해자들은 보통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나요? 일면식이 있는 관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지만, 대부분 SNS, 채팅앱, 데이팅앱 같은 온라인 공간을 통해 접근합니다. 유명인의 사진을 도용하거나 AI로 인물을 가공해 외국인 사업가나 의사, 군인 등으로 위장하죠. 프로필에는 명품·고급차·해외여행 사진을 올려 ‘재력가’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칭찬과 애정을 표현하며 경계심을 낮춥니다.
관계가 시작된 뒤 특정한 사기 패턴이 있나요? 초반엔 피해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금전적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성적 호감을 느낀 피해자는 관계 단절이 두려워, 혹은 연민과 죄책감 때문에 돈을 송금해주죠. 때로는 투자 같은 건설적인 제안을 하거나, 예치금 요구·계좌 오류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직접적인 송금을 유도합니다. 더 나아가 사기성 투자에 투자자 유치를 돕게 하거나 현금 전달책으로 쓰는 등 피해자를 범행 도구로 이용할 때도 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락하는 경우죠.
단순한 금전 피해 외에도 다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나요? 가해자들은 피해자들과 강한 라포를 형성하며 내밀한 개인 정보를 빼냅니다. 교제 관계를 표방하기 때문에 사회적·재정적인 정보는 물론, 피해자의 노출 사진 같은 성적인 자료까지 습득하죠. 이후 관계가 틀어지면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성적 착취물을 요구하는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이토록 무방비해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로맨스 스캠 피해자들은 대체로 사회적 관계망이 좁거나 정서적으로 고립된 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정한 말과 공감, 관심을 꾸준히 보여주는 상대가 나타나면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라 믿게 되죠. 그래서 가해자는 다른 범죄와 달리 협박보단 관심과 애정. 공감대 형성에 주안점을 둡니다. 삶에 대한 조언을 주기도 하고, 함께할 미래를 얘기하며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얽어둡니다.
기억에 남는 실제 사례가 있다면요? 혼자 아이를 키우던 여성 의뢰인이 있었습니다. ‘의사이자 강남 건물주의 아들’이라며 SNS를 통해 접근한 남성에게 속아 생활비와 투자금 명목으로 거액을 송금한 사건이었죠. 의뢰인의 아이까지 책임지겠다는 달콤한 말로 신뢰를 얻었고, 결국 대출까지 받아 돈을 보냈습니다.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지만 오히려 그 말을 더욱 의심했어요. 가해자는 사실 헬스 트레이너였는데, 미행을 통해 헬스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야 사기임을 인지했습니다.
# 관계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의심될 땐 ‘거리 두기’, 피해 후엔 ‘연락 유지’
피해자가 사법 구제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스라이팅’된 상태이기 때문이죠. 연애 관계라고 생각해 사기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미 형성된 관계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들어 대응 시기를 놓치기 쉽습니다. 신뢰가 무너진 충격으로 소송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들은 사기꾼의 말은 믿으면서 변호사의 진심 어린 조언은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미 피해를 입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로맨스 스캠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들도 피해 사실을 접하며 ‘이러다 나도 당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피해를 입었다면 무엇보다 ‘초동 대응’이 중요합니다. 즉시 금융기관에 지급 정지를 신청해야 하고, 가해자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상대와 연결이 유지될수록 수사기관의 검거와 증거 확보가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한 빠르게 변호사를 찾아가 사건 전략을 세우고, 상황에 맞는 법적 조력을 받아야 합니다.
가해자를 검거하거나 피해금을 되찾을 가능성은 있나요? 금융사나 플랫폼에게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로맨스 스캠은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에 해당하며, 편취금이 5억원 이상일 경우에는 가중처벌됩니다. 계좌, 대포통장, 결제앱 등을 악용했다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도 추가되죠. 그러나 대부분의 피해자가 ‘스스로 송금한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에 금융사나 플랫폼 사업자에게 배상 책임을 묻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금전 송금이나 투자 제안을 받을 때는 무엇보다 이성적 판단을 유지하고 냉정하게 한 번 더 의심해보는 것이 최선입니다.
피해자들의 심리적 충격이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지원은 마련돼 있나요? 로맨스 스캠 피해자들은 대부분 수치심과 자책감 때문에 피해 사실을 숨깁니다. 대인 기피, 우울증, 신뢰 상실 등 심리적 후유증이 뒤따르죠. 범행 기간이 길수록 정신적 충격은 심해집니다. 하지만 강력범죄 피해자와 달리, 사기 피해자에게는 별도의 심리 상담이나 회복 지원 제도가 거의 없습니다. 온라인 스캠이 고도화되는 만큼 금융기관과 플랫폼 사업자 역시 단순 보이스피싱을 넘어 다른 유형 범죄에 대비한 예방·대응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공익광고나 교육 캠페인을 통해 대중의 경각심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로맨스 스캠인지 진짜 ‘플러팅’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초기에는 구별하기 어렵지만 몇 가지 뚜렷한 신호가 있습니다. 우선,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며 반복적으로 금전 지원을 요청하거나, 이를 거절했을 때 관계 단절을 언급한다면 의심부터 해야 합니다. 실제 만남을 미루거나 거부하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영상 통화를 하더라도 필터 등을 활용해 눈속임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재력·금융 정보 등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한다면 즉시 연락을 끊는 것이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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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닙니다, 사기입니다”... 내 돈을 노리는 달콤한 덫, ‘로맨스 스캠’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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